
감기가 낫고 나서도 냄새가 여전히 희미하다거나, 알레르기 비염이 심한 날에는 음식 냄새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는 경험을 한 사람이 꽤 많다. 일시적인 코막힘 탓이라고 넘기기 쉽지만, 후각 저하가 2주 이상 이어진다면 단순히 코가 막혀서 생긴 문제인지 아닌지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이 글에서 알 수 있는 것:
- 비염이 있을 때 냄새를 못 맡게 되는 두 가지 원리
- 일시적인 후각 저하와 지속적인 후각 손상을 구분하는 기준
- 회복 가능성과 치료 방향에 대한 일반적인 정보
냄새를 맡는다는 것이 어떤 과정인가
냄새를 맡는 과정은 생각보다 훨씬 정교하다. 공기 중에 섞인 냄새 분자가 코로 들어와 비강을 통과할 때, 코 천장 가장 안쪽의 좁은 구역인 '후각 열(olfactory cleft)'에 도달해야 한다. 이 구역에는 우표 한 장만 한 크기의 후각 상피가 있고, 그 안에 수백만 개의 후각 수용체 세포가 있다. 냄새 분자가 이 세포의 섬모에 닿아야 비로소 신경 신호가 만들어지고, 그 신호가 후각 신경을 거쳐 뇌의 후각 중추로 전달되면서 냄새를 인식하게 된다.
이 경로에서 어느 한 곳이라도 막히거나 손상되면 냄새를 느끼지 못하게 된다. 크게 보면 두 가지 상황이다. 하나는 통로가 물리적으로 막혀 냄새 분자가 후각 상피까지 도달하지 못하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통로는 열려 있지만 후각 상피나 신경 자체에 문제가 생긴 경우다.
비염이 후각을 방해하는 두 가지 방식
전도성 후각장애 — 통로가 막히는 경우
비염이 있으면 비강 점막이 붓고 분비물이 많아진다. 이때 문제가 되는 것은 단순히 코가 답답하다는 것만이 아니다. 후각 상피가 있는 후각 열은 코 천장 깊숙한 곳에 위치하는데, 비강 전체가 부어있거나 분비물이 가득 찰 경우 냄새를 머금은 공기가 이 구역까지 올라가지 못한다.
이 상태를 전도성 후각장애라고 한다. 신경 자체는 정상이지만 냄새 분자가 수용체에 닿는 경로가 차단된 경우다. 알레르기 비염이 있는 날 냄새가 희미하게 느껴지다가, 코가 뚫리면 다시 맡아지는 경험이 이에 해당한다. 비용종(코 안에 생기는 물혹)이 있는 경우도 같은 방식으로 후각 열을 막아 후각을 저하시킨다.
전도성 후각장애는 원인이 해소되면 회복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비교적 예후가 좋다. 비염 치료로 점막 부종이 가라앉거나 비용종을 제거하면 후각이 돌아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감각신경성 후각장애 — 신경 자체에 영향이 생기는 경우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비염, 특히 급성 바이러스성 비염이 심할 때는 염증이 후각 상피 자체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감기를 일으키는 일부 바이러스는 후각 신경 세포에 독성 효과를 나타내 세포 자체를 손상시키거나 세포 수를 줄인다. 이 경우 코막힘이 다 나은 뒤에도 후각이 회복되지 않는 상황이 생긴다.
이것이 감각신경성 후각장애다. 코감기 이후 냄새가 돌아오지 않는다고 느끼는 사람 중 상당수가 이 경우에 해당한다. 후각 장애 환자의 20~40%가 상기도 감염 후 발생한 감각신경성 손상과 관련 있다는 보고가 있다. 이 유형은 전도성 후각장애보다 회복이 느리고, 경우에 따라 완전 회복이 어려울 수 있어 조기에 진단받는 것이 중요하다.
알레르기 비염과 만성 비염에서 후각이 저하되는 특징
알레르기 비염은 증상이 있는 날과 없는 날 후각이 달라지는 변동성이 특징이다. 꽃가루가 많은 시즌에 냄새가 잘 안 맡아지다가 비염이 가라앉으면 다시 맡아지는 패턴이 반복된다면, 이는 대부분 전도성 기전으로 설명된다.
그러나 만성 비염이나 만성 부비동염으로 이어진 경우는 다소 다르다. 오랜 기간 지속되는 염증은 후각 상피 자체를 점진적으로 손상시킬 수 있다. 만성 염증이 계속되면 후각 신경 세포 수가 줄어들고, 후각 상피가 얇아지며, 심한 경우 후각 상피가 일반 호흡 상피로 대체되기도 한다. 이렇게 되면 코막힘이 해결되더라도 후각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
즉, 만성 비염이나 만성 부비동염을 장기간 방치하는 것은 단순히 코가 불편한 문제를 넘어 후각 기능 자체를 서서히 약화시키는 과정이 될 수 있다. 이 부분이 비염을 조기에 치료해야 하는 실질적인 이유 중 하나다.
일시적인 후각 저하와 지속적인 저하를 구분하는 기준
후각 저하를 경험했을 때 스스로 점검해볼 수 있는 기준이 몇 가지 있다.
첫 번째는 코막힘과 후각 저하가 함께 움직이는지 여부다. 코가 막힐 때 냄새가 줄어들고, 코가 뚫리면 냄새도 돌아온다면 전도성 후각장애일 가능성이 높다. 반면 코막힘이 없거나 코가 뚫려 있는 상태에서도 냄새가 잘 안 맡아진다면 신경성 문제를 의심해볼 수 있다.
두 번째는 지속 기간이다. 급성 감기나 비염 이후 생긴 후각 저하가 3~4주가 지나도 회복되지 않는다면 자연 회복을 기다리기보다 이비인후과 진료를 받는 것이 좋다. 후각 신경 세포는 재생 능력이 있지만, 손상이 누적되거나 오래될수록 회복이 어려워진다.
세 번째는 냄새의 질이 바뀌었는지다. 냄새를 아예 못 맡는 것이 아니라 원래 냄새와 다르게 느껴지거나, 없는 냄새가 나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이는 착후각 또는 환후각이라고 하며, 신경성 후각장애와 연관이 있는 증상이다. 이 경우에는 특히 진료가 필요하다.
회복 가능성과 치료 접근법
전도성 후각장애는 원인이 되는 비염이나 부비동염을 치료하면 회복되는 경우가 많다. 비강 내 염증을 줄이는 스테로이드 비강 분무제나 경구 스테로이드가 효과를 보이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비용종이 원인이라면 수술적 제거 후 후각이 40~84% 수준에서 개선되었다는 보고가 있다.
감각신경성 후각장애는 회복 속도가 느리고 예측이 어렵다. 바이러스성 비염 이후 생긴 경우 대부분 6개월 이내에 어느 정도 회복되지만, 일부는 수년간 지속되거나 완전히 회복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 치료에 한계가 있어 현재는 후각 훈련(olfactory training)이 가장 근거 있는 재활 방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후각 훈련은 장미, 레몬, 유칼립투스, 정향처럼 익숙하고 뚜렷한 냄새를 하루 두 번, 각 냄새를 10~15초씩 의도적으로 맡는 훈련이다. 최소 12주 이상 꾸준히 반복하는 것이 중요하며, 냄새를 맡으면서 그 냄새를 기억하려고 의식적으로 집중하는 것이 핵심이다. 후각 신경은 재생 가능성이 있는 신경이기 때문에 이런 자극이 회복을 촉진할 수 있다는 것이 여러 연구에서 확인된 내용이다. 단, 훈련만으로 모든 경우가 회복되는 것은 아니며 약 25~30% 수준에서 의미 있는 개선이 보고된다.
비염과 후각 저하, 기다리는 것이 항상 옳은 전략은 아니다
비염으로 인한 후각 저하는 많은 경우 일시적이고 원인 치료로 회복된다. 하지만 감기 이후 후각이 3주 이상 돌아오지 않거나, 만성 비염을 오래 방치해온 경우라면 단순히 기다리는 것이 좋은 전략이 아닐 수 있다. 후각 신경 세포는 재생이 되기는 하지만, 손상 기간이 길어질수록 회복 가능성은 낮아진다.
오늘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다. 비염 증상과 함께 후각 저하가 생긴 시점을 확인하고, 3~4주가 지나도 나아지지 않는다면 이비인후과에서 후각 기능 검사를 포함한 진단을 받아보는 것이다. 일시적인 문제인지, 치료가 필요한 상태인지를 구분하는 것에서 회복의 첫걸음이 시작된다.
FAQ
Q1. 코가 뚫렸는데도 냄새가 잘 안 맡아집니다. 비염 때문인가요?
코막힘이 없는 상태에서도 후각이 저하된다면 신경성 후각장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비염이 있는 동안 바이러스나 지속적인 염증이 후각 신경 세포에 영향을 주었을 수 있습니다. 이 경우에는 비염 치료만으로 해결되지 않을 수 있으므로 이비인후과에서 후각 기능 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Q2. 알레르기 비염이 있는데 특정 계절에만 냄새가 줄어듭니다. 걱정해야 하나요?
비염 증상이 심한 시기에만 후각이 줄어들고, 증상이 가라앉으면 회복된다면 대부분 전도성 후각장애로, 비강 점막 부종으로 인해 냄새 분자가 후각 상피까지 도달하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비염을 꾸준히 치료하면 후각 저하도 함께 개선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만 계절마다 같은 패턴이 수년간 반복된다면, 만성화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Q3. 후각 훈련을 해보고 싶은데 집에서 가능한가요?
가능합니다. 장미, 레몬, 유칼립투스, 정향처럼 뚜렷하고 익숙한 냄새가 나는 에센셜 오일이나 향신료를 준비해서, 하루 두 번 각 냄새를 10~15초씩 천천히 맡는 것을 12주 이상 반복합니다. 냄새를 맡는 동안 그 냄새의 기억이나 이미지를 떠올리며 의식적으로 집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단, 훈련이 효과를 발휘하려면 원인 질환인 비염을 함께 치료하는 것이 전제가 됩니다.
Q4. 비염 치료약을 오래 먹으면 후각에 영향이 생기지 않나요?
일부 약제가 후각이나 미각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특히 장기간 사용하는 항히스타민제나 비충혈 제거제 등은 점막을 건조하게 만들어 냄새 분자의 전달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비강 내 스테로이드 분무제는 오히려 후각 저하를 개선하는 데 사용되기도 합니다. 복용 중인 약과 후각 변화가 시점상 겹친다면 처방 의사에게 알리는 것이 좋습니다.